안동김씨(安東金氏)에 대한 개괄적 소개

 

   성근진사공파

 

 

성근진사 이대원 장군

派  祖 : 成根(11世)

官  爵 : 進士

配  位 : 晉州河氏

墓  所 :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내기리 능우

祭享日 : 음력 10월 初丁日

世居地 :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희곡리 여문동

忠烈公 李大源 將軍

성근진사 이대원 손죽도

∙ 이대원(15世, 성근진사공파)은 1566년 경기도 평택시 희곡리에서 출생하시어 일찍이 17세에 무과에 급제하여 우리나라ㄴ 역사상 가장 젊은 나이 21세인 1586년 전라남도 고흥 녹도에 재직중 왜군의 침입을 막다가 22세의 젊은 나이에 전사하여 사후 병조판서에 추증됨

 

∙ 장군의 전공으로는 임진왜란 5년전인 1587년 남해안 손죽도(지금 전남 여수시)앞바다에 자주 침몰하는 왜구들을 전멸시키고 대승하여 적장을 사로잡았다. 당시 상관인 수사 심완이었는데 그 전공을 자기와 공동 전공으로 하여 조정에 보고하라는 심완의 청탁을 거절하였다.

패전에 앙심을 품은 왜군은 더 많은 전선을 이끌고 다시 침범하였을 때에는 심완은 충원군도 지원해 주지 않고 출격명령을 내려 3일간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하였다. 이를 지켜보았던 백성들은 분노하여 이대원장군이 전사한 것은 심완 때문이라는 상소를 올려 심완은 효수형에 처하게 되고 이대원장군의 전적은 더욱 빛나게 된다.

 마을 주민들은 장군의 시신을 수습하여 가묘를 써서 매장하였으며 매년 3월3일 주민들이 마을의 수호신으로 제사를 지내고 있음

전사하기 전 이장군은 속 적삼에 血書로 絶命詩를 지어 愛馬를 이용하여 手下 將帥에게 평택 고향집에 전달하도록 하여 쉬지 않고 달려온 애마는 평택에 도착하여 적삼을 가족에 전달하여 가족들은 이 장군이 전사한 것을 알고 속 적삼으로 무덤을 만들었고, 밤낮없이 달려온 말이 죽어 이대원장군 묘  하단에 묻어 주어 지금은 忠馬塚으로 불러지고 있다.

 日暮轅門 渡海來 兵孤勢乏 此生哀  

          해 저무는 진중에 왜군이 바다건너와 외로운 병사 힘 다해 끝나는 인생 슬프다

 君親恩義 俱無報 恨人愁雲 結不開

          나라와 어버이 은혜 갚지 못해 원한이 구름에 엉켜 풀길이 없네

 확충사( 경기도 기념물 제 56호)

성근진사 이대원 확충사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희곡리에 있는 이대원 장군을 모시는 사당으로 인근에 신도비와 동상 그리고 묘지가 있으며  매년 3월 평택시 주관으로 추모행사를 거행하고 있음

참고로 장군의 신위를 모신사당은 포승읍의 확충사 외에 고흥의 쌍충사(전남 고흥군 도양읍 봉암리 녹동 2197). 손죽도 충렬사(전남 여천군 삼산면 손죽도), 여수 영당(전남 여수시 남산동) 등 전국에 4곳이나 있다.

쌍충제전

성근진사 이대원 쌍충대전

쌍충사모충위원회에서는 매년 4월 30일 전남 고흥군 도양읍 녹동항 인근에 있는 쌍충사에서 추모제를 봉행한다.

 

성근진사 이삼장군 고택

 

성근진사 이대원 추모재